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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한 방에 날아간 두통, 선조와 허임의 침술 이야기

by money note100 2024. 9. 22.

조선 시대의 임금들은 신하들뿐만 아니라 종종 자신들의 건강 문제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중 선조 임금은 두통으로 평생을 고생했던 왕이었습니다. 선조는 고질적인 두통 때문에 "오늘은 두통이 덜하긴 하지만, 침 없이는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신하들에게도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했으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선조의 두통은 단순히 일시적인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난해한 증상인 ‘하얀 편두통’이라는 독특한 형태였는데, 얼굴이 창백해지고, 소화불량에 어지러움, 심지어 이명까지 동반되는 아주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선조가 겪었던 정치적 혼란, 즉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인한 끊임없는 긴장감이 그의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때 조선 최고의 명의, 허임이 등장합니다. 허임은 침술의 대가로서 이미 명성이 자자했으며, 일본에서조차 그의 침술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두통은 단순히 머리의 통증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선조에게는 허임의 침술이 없었다면 아마도 두통으로 인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허준과 허임, 두 명의 명의가 선조의 두통을 다스리다


당시 조선은 의학 발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고, 허준과 허임이라는 두 명의 천재적인 의사가 있었으니, 선조는 나름대로 복 받은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으로 유명하지만, 허임 역시 그의 침술로 이름을 날리며 조선을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의사였습니다. 그들의 치료법이 합쳐지면서 선조는 두통과 싸우면서도 어느 정도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임은 선조의 두통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의 에너지를 조율하며 건강을 되찾게 도와주는 소중한 명의였습니다.

 

허임의 침술은 그야말로 정교한 기술이었습니다. 선조의 두통은 스트레스와 정치적 혼란이 얽힌 복잡한 병증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침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허임은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경혈을 정확히 찾아 침을 놓는 데에 뛰어났고, 그 덕에 선조는 그의 치료를 받고 국정을 좀 더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동의보감의 비법, 결명자와 녹두베개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는 두통을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명자와 녹두가 그 대표적인 치료 재료입니다. 결명자는 눈을 밝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초로, 이를 베개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가루로 빻아 머리 태양혈 근처에 바르면 두통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녹두 역시 해독 작용이 뛰어나 두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방풍나물이라는 약재도 편두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풍나물은 ‘바람을 막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편두통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찬 바람을 맞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 방풍나물을 죽이나 무침으로 만들어 먹으면 두통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선조의 두통, 현대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오늘날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선조의 두통은 아마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서 기인한 편두통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매일같이 긴장과 압박을 받아왔을 것이고, 그로 인해 신체적인 반응으로 두통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특히나 당쟁으로 인한 끝없는 스트레스는 그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짓눌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때마다 허임의 침술은 임금에게 일종의 피난처와도 같았습니다.

 

현대에도 편두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약물 치료보다도 스트레스 관리, 몸의 균형을 맞추는 다양한 치료법이 병행될 때 더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선조가 허임의 침술과 동의보감의 다양한 처방을 통해 안정을 찾았던 것처럼, 현대인들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왕의 두통은 국가의 두통이었다


조선의 역사는 때로는 전쟁이나 정치적 위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신체적 고통과도 깊이 얽혀 있었습니다. 선조의 두통은 단순히 한 왕의 개인적인 고통이 아니었죠. 그것은 국가적 혼란과 긴장의 상징이었으며, 왕이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 조선은 허준과 허임이라는 명의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선조는 두통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국정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두통과 싸우는 임금과 그를 돕는 명의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의학적인 에피소드가 아닌, 정치와 건강,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한 시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명의들과 그들의 치료법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건강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